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어노크 식민지 (문단 편집) === [[1590년]], 존 화이트의 로어노크 귀환, 식민지인들의 실종 === 1590년 화이트는 로어노크로 돌아왔지만 식민지는 버려진 지 오래였고 나무기둥에 "크로아토안"이라는 문구만 적혀 있었다. 다만 화이트는 떠나기 전에 "'''혹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면 눈에 잘 띄는 곳에 행선지를 기록해두라.", "만약 강제로 떠나게 되었다면 몰타 십자가를 남겨라.'''"라고 지시를 내려뒀고, 섬 안에는 몰타 십자가 표식은 물론 어떠한 전투나 충돌의 흔적도 없었다. 따라서 화이트는 식민지인들이 안전하게 크로아토안섬(현재의 해터라스섬)[* 영국인들이 1584년 로어노크에 처음 왔을 때 완치스(로어노크 출신)와 맨티오(크로아토안 출신)라는 원주민 청년 두 명을 영국으로 데려가 구경시켜 주고 이듬해에 로어노크로 귀환하는 영국 보급선에 태워 돌려보냈는데, 돌아온 이후 완치스는 영국인들을 적대했으나 맨티오는 영국인들에게 호의적이어서 로어노크 식민지인들이 타 원주민 부족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수차례 도움을 줬다. 이 무렵 맨티오는 크로아토안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 부족의 유력자로 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멀리 갈 수도 없고 적대적인 원주민 부족에게 포위당한 식민지인들 입장에서는 크로아토안 행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.]으로 이주했다고 추측하여 수색하려 했다. 하지만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는 참이라 함대에서 이를 거부했고 이튿날 섬을 떠났다. 졸지에 딸과 사위, 손녀까지 모두 잃고 영국으로 귀환한 존 화이트는 평생 가족들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남은 일생을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고, 1593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